방문객 수·쓰는 돈 줄었다는데
마음 열어야 지갑 연다…마구잡이 쇼핑 사라지고 싸지만 서비스 좋은 숙소
숫자 '8' 들어간 마케팅, 붉은 원숭이 장식 가방…
중국인의 기호 고려한 상품엔 아낌없이 돈 써
중국 광저우에 사는 쓰옌(23)씨는 작년 말 서울 강남에서 5박 6일 머물면서 220만원가량을 썼다
미리 예약한 서울 신사동 A 성형외과에서 100만원 정도를 내고 쌍꺼풀과 앞·뒤트임 수술을 했고,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9만원씩 내고 묵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쓰옌씨처럼 한국에 와서 성형수술을 하고 가는
중국인들을 위해 매일 아침 저녁 죽(粥)을 지어 주고, 방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 한 개당 2000원쯤 하는 호박즙을
넣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굴 부기가 빨리 빠지도록 서비스하는 것이다. 쓰옌씨는 "얼음팩을 할 수 있는 도구도 있고
화장실엔 족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방에서 벨을 누르면 두통약이나 생리통약도 갖다준다. 여러모로 수술 후 부기를 빼고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나머지 돈은 가로수길과 명동을 오가면서 화장품 쇼핑을 하고 한국산 가방과 옷을 사는 데
썼다"고 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무작정 지갑을 열던 몇 년 전과 달리 쓰옌씨처럼 요즘 서울을 찾는 젊은 중국인들은 꼼꼼히 따져보고
돈을 쓴다. 인터넷 검색에 능한 20~30대 중국인들은 바가지를 씌우는 모텔이나 고가의 특급호텔에서 자는 대신,
시설 좋고 서비스도 괜찮은 게스트하우스를 찾거나 아예 '에어B&B' 같은 숙박 상품을 찾는다. 돈은 꼭 필요한 곳을 정한 뒤
쓰고 간다. 성형이면 성형, 미용이면 미용, 쇼핑이면 쇼핑 식으로 한정해서 쓰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유커(遊客)의 숫자는 551만8952명 (작년 11월 말 현재).
전체 외국인 관광객 1211만5201명의 45.6를 차지 한다.
2014년 중국인 관광객이 612만6865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조금 줄어든 수치다.
업계에선 "6월부터 8월까지 메르스가 있었기 때문이고, 10월과 11월엔 2014년보다 더 많이 왔다"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갈수록 경험이 풍부해지는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선 좀 더 세밀한 관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커 취향 알아야 판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샤넬보다 인기'라는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 MCM은 올해 초 금색 원숭이와 바나나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지갑과 가방 장식을 내놨다. 신제품 가방은 붉은색으로 정했다. 올해가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원숭이 해(丙申年)인 것을 감안해
내놓은 것이다. 중국에서 붉은 원숭이는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를 돕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MCM의 류지연 그룹장은 "MCM의 강점은 글로벌 브랜드지만 아시아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빠르게 반영한다는 점에 있다"면서 "행운을 가져온다는 붉은 원숭이 모티브를 발 빠르게 패션에 적용할 수 있는 브랜드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13일 MCM 명동 매장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곳을 찾은 한 중국인은 "좋아하는 패션 액세서리도 사고
복도 덩달아 받아가려 한다"면서 원숭이 모양 장식을 구입했다.
14일 서울 신촌 '팔색삼겹살' 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다. 삼겹살에 갖가지 소스를 묻혀 8가지 빛깔을 나게 한 것으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을 부각시킨 덕에 인기를 끌고 있다. / 장련성 객원기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을 내세운 곳도 많다. 8의 중국어 발음은 '바'인데, '부자가 되다(發了)' '발전(發展)'이란 뜻
'發(파)'와 발음이 비슷해 행운의 숫자로 통한다. 서울 시내 몇몇 백화점과 면세점들이 '888할인행사'를 종종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8800원, 8만8000원으로 가격표를 맞춰서 파는 곳도 제법 된다. 팔색삼겹살도 인기다. 삼겹살에 각종 소스를 묻혀
8가지 빛깔로 내놓는데, 손님의 80%가 중국인이다. 전국에 매장이 34개라는 팔색삼겹살 업체 '팔푸드' 홍보담당 이유진씨는
"신촌 본점엔 중국인 단체 예약 손님이 100명씩 주 3, 4회가량 찾아온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팔색삼겹살과 전골, 쌈을 함께 내놓는다.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주는 것이 중국인 식습관과 취향에 맞는다는
설명이다. 13일 오후 이곳에서 만난 관광객 장차오(30)씨는 "친구와 5박 6일 자유여행으로 왔는데, 가게 이름(팔색삼겹살)도
맘에 들고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개돼 있기에 왔다"고 했다. 4인 한 상 차림이 3만2000원으로, 1인당 8000원꼴이어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싼 편이 아니라고 한다.
한편 부산에서 시작된 '설빙'은 중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메뉴를 내놔서 인기를 끄는 경우다. 우유를 넣은 눈꽃 빙수, 콩가루가 들어간 인절미 빙수 등이다. 보통 빙수가 팥을 주로 얹어 내는 것과 약간 다르다. 이 회사 김동한 부장은 "올해 처음 중국에 진출했는데, 이미 중국에 30개 이상 우리 제품을 그대로 모방한 짝퉁 가게가 있더라"고 했다. 상하이 매장에 가기 위해 중국 지방에서 2시간씩 차를 타고 오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젊은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인 '짜이 서울'도 인기다. 짜이(在)는 '~에 있다'는 뜻. '짜이 서울'은 '서울에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매월 발행 부수 3만부, 누적 발행 부수는 160만부를
돌파했다. 중국 현지에서도 7000부가 나온다. 최근엔 '짜이 부산'도 출간됐다. 서울 가로수길, 청담동, 이태원과 성수동, 망원동까지 서울의 구석구석 인기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중국 SNS 웨이보에는 "짜이 서울을 보고 고양이 카페도 가보고 한강에서 김밥과
족발도 배달시켜 먹어봤다"는 리뷰가 자주 올라온다.
SNS에 불만 쏟아내는 젊은 유커
전문가들은 그러나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소위 '패키지 여행'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높다고 말한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 패키지 관광은 낮은 가격으로 묶어서 사람을 데려오기 때문에 서울 주변부나 경기도 모텔에서 재우고 관광지나 명소에 데려가지 않고 쇼핑 장소에만 사람들을 끌고 다녀서 불만을 산다"고 지적했다.실제로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를 검색해보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근 찜질방에서 재웠고 돌솥비빔밥 하나 먹인 뒤 면세점을 세 군데나 끌고 다녔다. 꿀이나 김, 홍삼 같은 특산물만 계속 파는 가게도 있었다"는 식의 리뷰가 넘쳐난다.
2014년 8월엔 홍콩 관광객들의 비빔밥 값이 2만2000원인데도 20만2000원을 받은 음식점 주인이 서울경찰청 관광경찰대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심한 경우가 아니어도 국내 패키지 여행에 대한 불만은 비슷비슷하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은 일정이
마치 복사해 붙인 것처럼 똑같다는 것이다. 서울 4박 5일 일정은 대개 '삼청동―북촌―동대문―남산 한옥마을―N서울타워―면세점
―경복궁―신촌'인 식이다. 한 중국인은 바이두에 "경복궁은 중국 고궁과 비슷한데 스케일이 작았고 전통 문화 체험도
중국과 비슷했다. 싸구려 음식점과 싸구려 기념품점만 돌다 왔다. 이럴 바엔 그냥 중국 여행을 다니겠다"라고 썼다.
작년 2월엔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서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미리 숙박료를 지불하며 예약한 뒤 찾아갔지만
막상 그 주소지에서 숙박업체를 찾지 못했고, 이들을 태우고 다닌 택시 기사는 길을 엉터리로 안내하는 바람에
결국 택시비를 2만원 넘게 내고 명동 지구대에서 하룻밤을 잔 일도 있었다.
중국 네티즌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 웨이보에도 자유여행객의 불만은 적지 않게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가로수길에서 보톡스 시술 받고, 명동에서 화장품 사고 나면 더는 갈 곳이 없다. 특히 강남에선 중국 사람들이라고
쳐다보는 눈길도 불쾌해서 더는 가고 싶지 않다"고 썼다
불만도가 높아질수록 돈을 쓰는 액수도 줄어든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1인당 한국에서 쓰는 돈은 2014년엔 1247달러였으나 2015년엔 1144달러로 줄어들었다.
장병권 호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관광 정책은 여전히 중국인을 '한국에 처음 오는 관광객'으로 인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을 다시 오게 하고 또 오게 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중국인들이 갈수록 해외여행을 많이 하면서 나라 간 서비스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 한국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2016.01.16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성유진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5/2016011502207.html